더위와 노동
사람 사이에 놓인 막걸리
K-전통주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젊은이들 사이에, 그리고 해외에서도 우리 전통주가 인기다.
다양한 방면에서 한류문화열풍이 불면서, K-콘텐츠로서의 한식과 전통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은주전자 ©국립민속박물관
막걸리 잔 ©광주광역시시립민속박물관
뜨거운 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부르신다. 양은 주전자를 하나 건네며, 양조장에 가서 막걸리 반말만 받아 오라고 하신다.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 내리쬐는 시골 길을 따라 1시간을 걸어 양조장에 도착한다. 허름한 간판과 나무 문틀로 이루어진 그곳은 오래된 듯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양조장 아저씨는 빈 주전자를 흔들어 보시고는, 큰 통에서 술국자를 꺼내 부지런히 주전자를 채워주신다. 흘러넘칠 듯 묵직한 막걸리를 들고 나오는 길, 여전히 더위는 가시지 않았고 손잡이는 뜨겁고 무겁다. 하지만 무언가 귀한 것을 품은 듯한 기분이 든다.
돌아가는 길, 주전자 끝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들이켠다. 처음 느껴보는 곡물 특유의 단맛과 발효된 미세한 탄산감, 혀끝을 스치는 알코올의 따뜻함이 묘하게 어울린다. 이 술은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에, 그리고 기억에 스며든다. 왕복 두 시간의 여정 끝, 막걸리의 종착지는 어머니와 이웃들이 함께 품앗이를 하던 밭이었다. 더운 여름 서로의 노동(품)을 교환(앗이)하며 이루어지는 품앗이의 시간. 그들의 손에는 괭이와 낫이 들려 있고, 그 곁에는 내 주전자에 담겨온 막걸리가 놓인다. 막걸리 반말, 약 10리터의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그날의 더위와 노동,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식혀주는 문화적 매개체였다.
여행 중에 중년 부부가 주막에서 요기하는 광경을 그린 작품. 국자로 막걸리를
떠내는 주모의 모습이나 술 사발이 조선 후기의 주막 풍경을 잘 보여준다.
〈주막〉,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향수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한국 전통주가 공동체 속에서 수행해 온 실질적인 기능을 상기시킨다. 술은 말보다 더 깊은 유대를 형성해주는 도구였다. 말로 다하지 못하는 감사와 연대, 노동의 가치와 함께함의 의미는 술잔을 나누며 형성되었다. 한 잔의 막걸리는 서로의 손에 건네지며 ‘같이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이것은 단순한 식음료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전통주가 공동체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전통주는 단지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농촌과 도시, 세대와 세대를 잇는 생동하는 연결고리였다. 전통주의 사전적 정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은 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이나 제조법의 전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연식은 《한국 전통주와 민속문화》에서 전통주가 ‘계절과 기후, 마을의 기억과 축제, 감성과 노동이 응축된 복합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막걸리, 약주, 청주 등의 종류와는 무관하게 전통주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구성하는 정서적·사회적 기반이었음을 시사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특히 가양주는 농촌의 생활문화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각 가정에서 빚는 술은 단지 가족의 기호에 맞는 음료가 아니라, 명절과 제사, 잔치와 공동작업 등 공동체 의례의 필수 요소였다. 윤경로의 《한국 농촌 공동체의 구조와 변동》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공동체에서의 음주 문화를 사회적 관계망 형성과 유지의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두레나 품앗이처럼 협동노동 이후의 술자리는 노동의 성취를 축하하고 다음 협업을 위한 신뢰를 구축하는 시간이었다. 술은 단지 기호적 소비가 아니라 공동체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통주는 공동체 내부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재생산하는 구조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이는 단지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일본의 니혼슈, 중국의 고량주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전통주는 대부분 해당 국가의 주원료(포도, 보리, 쌀, 수수 등)를 바탕으로 지역적 특색과 농업 시스템, 식문화와 결합하여 발전해왔다. 즉, 전통주는 단지 ‘술’이 아니라, 해당 공동체가 가진 자연·기술·문화의 총체적 결합체이다.
지승호리병술이나 약 등을 담아 휴대하는 용기. 지승(紙繩)을
호로병호리병을 호로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롱박의 속을
은제과형주전자조선시대 연향의 공간에는 술병과 술잔, 다구(茶具)가 같이 놓였다. 주전자는 본래 술을
데우는 그릇 또는 술을 담아 잔에 따르는 그릇이다. 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조선시대 주전자는
재료와 형태에서 더욱 다종다양해졌다. 사진은 화유옹주의 묘 출토품.
©국립고궁박물관
가이 가이(斝彝)는 벼 이삭을 그려 넣은 술 항아리이다. 궁에서사용한 제기(祭器) 중 하나다. ©국립고궁박물관
유제용작 궁에서 술을 뜰 때 사용한 제기(祭器)로 손잡이 부분에 용머리 장식이 된 국자 ©국립고궁박물관
한국의 전통주도 마찬가지다.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1만 4천년 전의 볍씨는 한국이 쌀 재배 문화의 기원이었음을 보여준다. 《현대고고학의 이해》에 따르면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곳으로, 한반도의 농업과 술 문화가 얼마나 오랜 역사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쌀을 바탕으로 빚은 막걸리와 약주, 청주, 소주는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농사의 결과물이자 계절의 산물이고, 공동체 의례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심각한 단절을 맞는다. 1916년 제정된 ‘조선주세령’은 조선인의 자가 양조를 면허제로 통제하며 전통 가양주 문화를 억압했다. 이는 단지 술을 빚는 기술의 통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수행되던 문화적 실천을 해체한 사건이었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는 공동체 기반의 삶을 구조적으로 해체했고, 술은 점차 ‘말 없는 문화’에서 ‘상품화된 기호’로 변모했다. 회식 문화는 그 잔재로, 여전히 비공식적 유대의 장으로 작동했으나, 위계적·강압적 특성으로 인해 오히려 공동체 회복의 장치가 아닌 문제의 구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다시금 전통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통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2004)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주 제조 교육과 체험프로그램, 지역 브루어리 육성 등은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민 간 신뢰를 형성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는 로버트 D. 퍼트넘이 《Bowling Alone》에서 주장한 ‘사회적 자본’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비공식적 사회활동과 커뮤니티 기반의 참여가 시민 신뢰와 협력을 촉진한다고 보았고, 이는 전통주 문화가 오늘날 사회의 해체된 관계망을 회복하는 데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전통주 문화의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튜브, 블로그, 온라인 클래스 등은 전통주 제조법과 음용 문화를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는 문자 기반 교육이나 제도 중심의 지식 전승과는 다른, 경험 기반의 1차 지식공동체에서 시작된 전통주의 전승 방식이 3차 지식공동체로 진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제는 단지 어머니의 심부름이 아니라, 도시 청년이 온라인에서 막걸리를 빚고, 지역 농산물로 술을 만들며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문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결국, 전통주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나 미식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다시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회복해야 할 실천의 방식이다. 술은 마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담는 그릇이고 나누는 손길이며, 기억이고 위로이고 문화이다. 뜨거운 여름 밭에서 마셨던 막걸리 한 잔의 기억은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잇는 온기이며, 땅과 계절을 담은 역사이며, 함께 사는 삶의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을 품은 전통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공동체문화에서 본질적인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
옹기 술독술독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번호를 매겼던 용기이다.
술춘술독과 비슷한 쓰임으로, 술을 담아서 옮길 때 사용한 용기
문양이 없는 조선시대 잔
조선시대 술잔, 백자음각새모양잔글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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